Verdict
복잡한 신념을 담았지만 단순하게 봐도 탈만한 전기차
GOOD
- 신중하고 조심스러운데다 비밀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주행감각
- e액슬에 사륜구동 그리고 실내 소재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BAD
- 경쟁자 대비 애매한 상품성, 결정타가 없다
- 렉서스 RZ 450e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Competitor
- 기아 EV9 : 더 크고 멀리 갈 수 있으며 편의장비는 훨씬 더 훌륭하다
- BMW iX3 : 브랜드 정체성을 모두 담은 총력이 느껴지는 실내외 디자인
렉서스 RZ450e는 렉서스가 처음 선보인 전기차다. e-TNGA 플랫폼부터 71.4kWh 리튬이온 배터리는 물론 실리콘 카바이드 인버터까지 모든 게 렉서스 RZ450e에 처음 들어간 것. 그만큼 렉서스로선 렉서스 RZ450e가 실패해선 안될 중요한 모델이다. 토요타 Bz4X로 선행학습을 혹독하게 치렀던 결과값을 반영한 모델로 사실 매우 중요한 모델임에 틀림없다.
반면 렉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전동화 프로세스를 전기차로 획일화하고 있지 않다. 세계 각국의 인프라, 에너지 상황 및 고객의 사용 패턴을 고려해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전기차(BEV) 및 수소차(FCEV) 등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일명 멀티패스웨이(Multi Path Way) 전략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기차가 1번이 아닌 것으로 하이브리드 대표주자인 토요타의 기존 전략을 더 확장시킨 것으로 인식된다.
전기차가 미래차라고 선포하고 2035년까지 내연기관 생산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한 후 전기차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여타 브랜드들과는 다른 길이다. 전기차만이 유일한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토요타의 선언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 입장으로선 시그널이 명료하지 않다. 렉서스 RZ450e 입장에서는 플랫폼부터 배터리 등 핵심부품까지 모두 마련한 셈인데 단독 무대에 서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배경의 결과 현실에서는 렉서스 RZ450e를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게 된 필연적 결과가 빚어졌다. 누구는 개성으로 느끼겠지만 대중적 인기가 부족한 차는 중고차 감가비율이 통계적으로 높아 제값을 받기 어렵고 고급차를 탄다는 소유자의 만족감도 떨어진다. 대중차가 아닌 프리미엄 브랜드로선 썩 달갑지 않은 점이다.
우리는 이 차를 다양한 형태로 시승했다. 강원도 스피디움까지 장거리를 달렸으며 금요일 오후 러시아워에 강변북로와 순환도로를 누볐다. 그래서 달린 주행거리는 500km.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렉서스 RZ450e는 누구에게든 추천할 만한 차였다.
대형차급을 넘보는 덩치와 소재
렉서스 RZ450e는 전장 4,805mm, 넓이 1,895mm, 높이 1,635mm, 축거 2,850mm로 일반적인 중형 SUV 사이즈다. 하지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쓰고 앞유리를 길게 앞으로 빼는 등 실내 공간의 거주성을 크게 높여 실내에서는 대형 SUV에 못지 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쿠페형 루프라인을 채택해 측면에서 보는 모습이 매우 수려하고 공기역학적인 실루엣을 차체 곳곳에 배치해 디테일도 매우 훌륭한 차다.
최근 렉서스 디자인은 과거 스핀들 그릴을 차체 전체로 확대한 스핀들 보디(Spindle body)를 채택하고 있다. 단순히 디자인을 뛰어넘어 디자인을 기능으로 승화시키는 방향인데 공기 역학적으로도 뛰어나고 스핀들 라인을 따라가며 차를 이해하는 시간도 사뭇 색다른 재미를 준다. 렉서스 RZ450e의 백미는 무엇보다 실내다. 특히 몸에 닿는 부위는 스웨이드로 포근함을 살리고 손이 맞닿는 곳은 가죽으로 배치해 착 감기는 맛을 구현해 냈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아울러 센터 디스플레이의 시인성도 시원시원해 정보확인도 수월했고 계기판의 전기차 주행정보 역시 산뜻하다. 문을 여는 방식도 전기차 만의 방전 시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용자의 불안감에 대응하고자 전자식과 물리식 모두 반영한 점도 치밀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리어의 공간 배치는 패밀리카 용도로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조기의 독립 조절방식이나 발공간의 배치 2열 시트 리클라이닝 기능과 압도적으로 큰 파노라믹 썬루프는 해방감마저 느끼게 해줬다. 여기에 넉넉한 트렁크 공간과 사용하기에 편리한 트렁크 해치 도어의 여닫는 전동 개폐 작동법도 다른 SUV들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포인트.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렉서스 RZ450e는 모두 픽업 및 차량 유지 관리 서비스 등이 포함된 ‘오토 케어 리스(auto care lease)로 판매되는 점이나 전기차 충전 100만원 상당 포인트까지 제공되는 것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실제로 시승을 하면서 1회 완속충전을 하고 약 1만원 가량 들었는데, 주 7~9회 충전을 한다면 연간 주유비에 맞먹는 지원금액이다.
주행 패키징도 탁월하다. 프런트와 리어에는 각각 전기차 전용 e-액슬을 장착해 사륜구동이 가능하다. 렉서는 ‘다이렉트4’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시스템 총 출력 312마력으로 최종 주행거리 377km를 확보했으며 실제 주행거리도 이와 크게 다른 편은 아니었다.
렉서스다운 차분하고 말끔한 승차감
렉서스 RZ450e는 전기차로서 시동을 켜는 순간부터 알 수 있다. 차분하고 나지막이 달릴 준비가 됐다는 신호음이 전부인데, 계기판 화면의 조도가 밝아지는 것과 어울려 꽤나 차분하고 담담하게 신호를 준다. 로터리식 기어변속은 최근 토글 버튼으로 바뀌는 독일식의 것과는 달리 확실히 반가운 지점이다. ‘스윽’ 엑셀을 밟으면 차는 그야말로 얼음에 미끄러지듯 ‘스르륵’ 덩치를 밀어낸다.
발진가속부터 추월가속까지 쭈욱 확인을 하면서도 출력의 단절이나 회생제동을 위한 감속의 격한 동작도 렉서스 RZ450e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가운데에서도 불끈하는 전기차 특유의 출력 배분도 갖춰 덩치를 쉽사리 휘두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부여해준다. 무엇보다 제동력이 기억에 남는다.
전기차는 일반적으로 내연기관차에 비해 더 크고 무겁다는 인상을 주는데 렉서스 RZ450e는 실제로 동급의 렉서스 RX보다 더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차의 제동력은 다르지 않다. 여기에 회생제동이 가미되면서 이질감이 생길 법도 한데 렉서스 RZ450e에는 그럴 여지를 없애 버렸다. 어떤 묘수를 부렸을까?
주행모드는 모두 5가지. 노멀 – 스포트 – 에코 – 레인지 – 커스텀이 있다. 이 가운데 레인지 모드가 가장 주행감각이 다른데 공조장치와 가속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역시 주행거리를 감안한 계산임을 체감하게 했다.
렉서스 RZ450e의 코너링은 배터리 차의 무게로 인해 민첩한 맛은 없었지만 패밀리카의 핸들링으로선 무난하다. 다만 조금 더 선형적인 핸들링 그리고 전기차 고유의 묵직한 크루징 감각은 후기형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아울러 주행거리 역시 최근 전기 SUV들이 500km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주행거리 연장에 대한 점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부터 배터리 그리고 e액슬 기반 다이렉트 4까지 거의 모든 시스템 솔루션을 쓸어담은 렉서스 RZ450e. 렉서스 고유의 주행감각과 고급소재 그리고 사용자를 향한 배려까지 느낄 수 있는 차였다. 조금 더 이름값이 높아지고 주행거리 역시 더 늘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가격대비 가치 측면에서는 출중한 편이다. 경쟁자로선 기아 EV9이나 제네시스 G80 일렉트리파이드, BMW iX3를 손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