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dict
아포칼립스도 이겨낼 차, 심지어 편하고 럭셔리하게
GOOD
- 실내외 뚜렷한 존재감과 넘치는 고급감
- 무지막지한 오프로드 성능
BAD
- 경쟁차들 대비 다소 좁은 실내 공간
- 다소 높게 느껴지는 1억 6,587만 원의 가격표
Competitors
-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 큰 차에 6.2리터 V8 엔진까지, 미국 감성 제대로
- 레인지로버 스포츠 : 설명이 필요 없는 귀족들의 럭셔리 오프로더
렉서스가 국내 시장에 완전 신차를 출시했다. 이름은 LX 700h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품은 프리미엄급 풀사이즈 SUV이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넓은 실내에 럭셔리한 주행 감각을 강조하는 차일 것만 같지만 LX는 한 가지 가치를 더 품고 있다. 바로 ‘정통 오프로더’를 추구하는 콘셉트가 그것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콘셉트가 한 차에 담긴 셈이다.
Design
렉서스 LX는 처음 마주하는 누구라도 압도할 위용을 가지고 있다. 길이x폭x높이가 각각 5,095x1,990x1,895mm에 달하기에 당연한 결과다. 특히 1.9m에 달하는 높이는 압도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SUV 형상에 각진 형태도 인상적이다. 다부진 형태와 높은 키는 분명 바디 온 프레임 구조가 영향을 끼쳤을 터다.
우람한 차체에 들어찬 디자인 요소들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다. 렉서스를 상징하는 스핀들 그릴을 비롯해 헤드램프와 범퍼 하단 공기 흡입구 등 모든 요소들이 큼직하게 들어찼다. 특히 그릴 안 두툼한 크롬 장식은 가로로 배치해 성벽을 쌓은 듯 단단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뒷모습은 특별한 굴곡 없이 매끈하게 처리해 주어진 차체 크기 안에서 실내 공간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애쓴 흔적을 드러낸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평면엔 최근 렉서스가 사용하는 ‘ㄴ’자 리어램프와 좌우를 잇는 램프 조합으로 세련미를 새겨 넣었다.
실내 인테리어는 운전자가 차에 보호받고 있다는 경험을 받게 한다. 반듯하게 높이 솟은 대시보드는 전통적인 오프로드 SUV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커다란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는 전방을 바라보는 시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위치에 있어 운전하는 동안 내비게이션 화면을 살피기 편하게 배치했다.
아울러 운전 주변엔 수많은 물리 버튼들이 그득하다. 대시보드 중앙을 비롯해 센터터널과 스티어링 휠 너머 좌우 앞까지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대시보드 중앙에 별도 디스플레이를 배치해 이 기능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줘 막상 사용하기는 편리하다. 모든 구성이 LX가 오프로드에 얼마나 진심인지 드러내는 셈이다.
하지만 실내 소재는 이와 대비를 이룬다. 마치 한 올의 흙이나 모래도 허용하지 않을 분위기다. 천장은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를 덧대고 실내의 거의 모든 부분을 가죽으로 마감했다. 실제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 역시 부드러움을 넘어 촉촉한 수준이다. 빼곡히 들어찬 오프로드 기능과 대비를 이뤄 오히려 어색함이 감돌 정도다.
Performance
국내에 들여온 LX는 700h 한 가지 파워트레인만 출시한다. 3.5리터 V형 6기통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병렬 방식으로 결합한 구성이다. 렉서스가 흔히 사용하던 직병렬 방식 하이브리드와 달리 엔진의 비중이 더 큰 방식이다. 따라서 엔진 단독 출력으로 415마력을 발휘하고 전기 모터가 힘을 더해 최고 457마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아 차체를 움직이는 감각은 출력 대비 진중함이 묻어난다. 2,840kg의 무게를 가졌지만 차체를 앞으로 밀어내는 와중에 힘들어하는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도로 흐름에 맞추기 위해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생각보다 강력한 가속 성능에 제한 속도를 넘기기 일쑤라 조심해야 할 정도다. 0-100km/h, 6.5초의 성능 수치도 이를 증명한다.
다만, 엔진의 음색은 다소 거친 편이다. RPM을 3,500 이상으로 높였을 때 특히 도드라진다. 다행인 건 전기 모터의 도움을 받아 일상 영역에선 RPM이 높게 치솟을 우려가 적다는 점이다. 또 객실에 전해지는 소음의 정도가 절대적으로 낮고 엔진의 진동도 부드러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체 감각은 부드러움에 초점을 맞췄다. 기본적으로 LX는 온로드 주행 상황에서 VIP를 모시기 위한 모든 요소를 만족시킨다. 자잘한 충격을 걸러내고 도로 위 너울은 여유롭게 흘려보내면서 과속 방지턱 등의 큰 요철은 실제보다 절반 이하의 크기로 느껴지게 한다. 이후 뒤따르는 불필요한 진동도 효과적으로 상쇄해 승객이 상상한 움직임 그대로 구현해준다.
동시에 차체 안정감도 돋보인다. 속도를 빠르게 높이거나 줄일 때 차체가 앞뒤로 기울어지는 피칭은 무게를 체감하게 하지만 급격한 차선 변경이나 코너링 상황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은 크지 않다.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상황에 맞게 차체를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덕분이다.
또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오프로드 구간에 접어들었을 때다. 유압 서스펜션을 기반으로 제작한 하체는 차체를 높이란 명령에 단 몇 초 만에 80mm를 들어 올린다. 험로에 들어설 준비를 마친 상태로 머드 구간을 지나 경사로 코스까지 너끈히 지나갔다. 생각보다 뾰족한 경사가 반복되는 구간을 이토록 커다란 SUV가 쉽사리 지나가는 모습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이어진 코스는 도강 코스, 전날 쏟아진 눈발에 물은 500mm까지 불어나 있었지만 LX는 유유자적 물을 헤치고 지나갔다. 바퀴 중간을 넘길 정도의 깊이라 도어를 열면 실내로 물이 들이칠 수준이었지만 LX의 실내는 그저 평온할 뿐. LX의 스펙상 도강 높이 역시 700mm에 달하기에 주파하는 내내 심적인 부담도 없이 지날 수 있었다.
이후 오프로드 코스는 점점 난이도를 더해 모굴 코스에서 정점을 찍었다. 낙타 등처럼 솟은 둔덕이 연속으로 이어졌고 LX는 그 위에 올라 단 두 바퀴만으로 차체를 떠받치며 코스를 진행했다. 실제 운전대를 잡고 앞으로 나아간 입장에선 수월하게 지나쳤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같은 코스를 지나는 LX를 살폈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2.8톤에 달하는 차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극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프로드를 주파할 수 있는 기능들뿐만 아니라 차체의 강성과 사륜구동 기술을 비롯해 휠베이스와 진입각, 탈출각 모든 부분에서의 설계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구간이었다.
놀라움의 해답은 시승 후 렉서스 치프 엔지니어와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2,850mm. 지난 1995년 출시한 1세대 LX 때부터 4세대로 이어오는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휠베이스 수치가 그 비결이었다. 넓은 실내 공간을 위해 너도나도 휠베이스를 늘리는 상황에 고집스레 지켜온 휠베이스 길이가 험로를 힘들이지 않고 주파할 수 있던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렉서스 LX 700h를 시승하기 전 국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차를 꼽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 어떤 닮은 차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로드까지 경험한 후 LX의 가치는 명확해졌다. 어떤 아포칼립스 상황이 서울 한복판에 닥치더라도 렉서스 LX에 앉아 있다면 살아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 그 평정심을 위한 대가로 1억 6,587만 원의 가격표는 충분히 납득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