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기아가 전기차 EV3의 가격을 공개했다. EV3는 일명 ‘캐즘’이라 부르는 전기차 판매 절벽 현상을 타개할 대중형 전기차를 표방한 차다. EV3 가격은 결정적인 키를 쥔 셈이다. 과연 EV3로 전기차는 다시 판매세를 회복할 수 있을까?
우선 기아 EV3의 가격을 살펴보자. EV3의 판매 가격은 전기차 세제혜택 적용 전 기준 스탠다드 모델 에어 4,208만원, 어스 4,571만원, GT 라인 4,666만원, 롱레인지 모델, 에어 4,650만원, 어스 5,013만원, GT 라인 5,108만원이다. 지역별 보조금을 비롯해 세제혜택을 반영하면 대략 3천만원대 중후반 가격대로 형성된다.
문제는 기아 EV3의 차급에 걸맞는 가격대인가라는 것. 기아 EV3는 차급을 결정짓는 전장과 축거가 각각 4,300mm, 2,680mm로 같은 브랜드의 인기 모델 셀토스(전장 4,390mm), 현대차 코나(4,350mm)보다도 작다. 동급의 SUV보다 작은데다 2천만원대로 시작하는 경쟁모델과 비교하면 앞자리가부터가 틀리다.
자동차 전문매체를 비롯해 각종 커뮤니티 반응은 냉담하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라는 점과 연료비나 정비 비용 등 보유에 따른 유지 비용이 차이가 있다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기아 EV3의 당초 목적인 ‘대중화’에 적합한 가격대는 아니라는 것. 동급의 전기 모델 니로나 코나 EV에 비해 편의장비가 우수하고 배터리가 더 크다는 의견도 있지만 EV 판매급감 현상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아 EV3 가격대는 소비자가 원했던 가격이라기 보다는 판매자가 받아야 할 가격이라는 셈이다.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아 EV3에 들어간 배터리 원자재인 리튬-선물 가격대가 올해 들어 -65% 떨어졌다. 저렴한 가격을 기대했던 기아 EV3 잠재 고객들이 실망한 이유 중 하나다.
기아 EV 가격 정책에 대한 소비자 의구심이 커진 것은 플래그십 전기차 EV9부터다. 기아 EV9은 출시 후 6개월 만에 대규모 할인 정책으로 판촉 전략을 수정했다. 할인은 파격적이었다. EV9 6인승 에어 2WD 모델 기본 가격은 7700만원, EV9 어스 4WD 모델 기본 가격은 8600만원이었다. EV9 7인승 어스 2WD 모델을 2600만원 정도 할인 받아 5800만원에 샀다는 네티즌도 나타났다. EV9의 전철을 EV3가 밟을 확률은 희박하지만 EV3 가격을 확인한 소비자들은 기아 EV9 가격대를 처음 접했던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가형 LFP 배터리를 탑재하더라도 2천만원대 EV3가 나왔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KGM의 LFP 배터리 전기차들도 여럿 있지만 판매량은 미미한 수준. 결국 선택을 받기 위해선 가격과 함께 브랜드와 상품성 모두 필요한 셈이다. 기아 EV3에 대한 아쉬움은 이 가격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EV9처럼 EV3에 대한 할인을 노릴 지에 대해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터. EV3 사전 계약 돌풍에 대한 뉴스가 들리지 않는다면 수 개월 내 할인 소식이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글로벌 전기차의 판매 성장은 지난해 절반에 불과하지만 올해 16.6% 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국내 상황은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 성장세 둔화의 빈틈을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글로벌 흐름도 비슷하지만 국내 상황은 하이브리드차가 더 큰 흐름을 차지한다. 심지어 하이브리드차 비중은 국내 전체 판매대수의 30%를 차지할 정도.
문제는 이런 전기차의 빈틈을 토종브랜드가 아닌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노리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메이커인 BYD는 BYD코리아 설립을 이미 마치고 2026년까지 전시장 70곳을 국내 설치하고 돌핀, 시걸, 아토3를 내놓는다. 여기에 올해 초에는 '바오'와 '한' 역시 추가 상표권을 등록했으며 내년까지 '씨라이언'과 '씨라이언 9' 2개 차종을 이후 2026년에는 4개의 추가 전기차를 추가한다. 3년 이내 모두 9개 차종을 라인업으로 갖추는 셈이다. 중국자동차 업체는 BYD 뿐 아니라 샤오펑, 지리자동차 등도 간접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경기도 평택항에는 수십대의 중국브랜드 자동차들도 이미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독점적 경쟁시장은 불완전하다. 시장 참여자의 숫자가 늘수록 경쟁은 치열해진다. 하지만 시장의 균열을 중국산 자동차가 채운다는 점에 대해 우리의 준비가 충분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