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디자인은 ‘도로 위 공학적 예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형미와 기능을 동시에 갖춘 결과물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를 보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죠. 모터플렉스가 들려드리는 포르쉐 디자인 스토리, 이번엔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입니다.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는 뛰어난 주행성능과 오픈탑 주행의 즐거움을 표방하는 모델입니다. 포르쉐 스피드스터는 1952년 356 아메리칸 로드스터를 초대 모델로 지금까지 60년 이상을 이어온 포르쉐입니다. 포르쉐를 아는 스타일리더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모델로 지난 수십 년간 절대적인 찬사를 받아온 모델 중 하나로 볼 수 있죠.
포르쉐 스피드스터의 역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를 탄생시킨 이는 다름 아닌 미국 굴지의 자동차 판매상 맥스 호프만(Maxx Hoffmann)이었습니다. 그는 1950년 10월 파리모터쇼를 마치고 포르쉐 경영진에게 포르쉐 356 기반의 북미 전용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가 포르쉐 개발진들에게 전달한 조건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가벼운 알루미늄 바디, 최고 사양 엔진, 장식을 걷어낸 인테리어가 전부였죠. 초기 주문 물량은 250대. 맥스 호프만의 선견지명을 믿은 포르쉐 경영진은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정은 역사상 포르쉐 이외의 인물이 포르쉐 제품을 결정한 첫 번째 사례로 남았습니다. 디자인은 포르쉐 356을 그렸던 에르빈 코멘다(Erwin Komenda)가 맡았습니다.
미국에 상륙한 포르쉐 356 아메리칸 로드스터는 ‘포르쉐 356 1500 스피드스터’로 이름이 바뀌었고 해안을 달리기 좋은 자동차로 젊은 층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대표 배우인 제임스 딘도 이 차를 소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정도에요. 특히 가격도 356 카브리올레보다 20% 가량 더 높았음에도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356 스피드스터는 이후로도 후속 모델로 1957년 356 A 1500 GS 카레라 GT 스피드스터(Carrera GT Speedster)로 이어지며 성공적인 안착을 증명했습니다.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드스터 장르를 표방합니다. 2개의 시트를 가진 오픈톱 스포츠카를 뜻하는 로드스터. 소프트톱을 수동으로 여닫는 장르다 보니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기능들이 투입되었죠. 커버를 열고 잠그는 매커니즘이나 차가 뒤집어지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탑승자를 보호하는 롤오버도 필요했습니다.
포르쉐는 이런 부가적인 기능들을 로드스터 고유 디자인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한마디로 기능을 디자인으로 표현한 겁니다. 특히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디자인 특징은 더블 버블 커버가 대표적인 특징으로 손꼽힙니다. 리어 보닛과 시트 뒷면이 연결되는 구조 그리고 롤오버 보호 기능을 담은 더블 버블 커버는 포르쉐 스피드스터의 백미로 여겨지죠.
더블 버블 커버는 다른 유럽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더블 버블 루프로 애용하는 방식입니다. 이탈리아의 수작업 자동차 메이커를 칭하는 '카로체리아(Carrozeria)' 자가토를 비롯해 푸조 RCZ, BMW G15 8시리즈도 더블 버블 루프를 활용했죠. 포르쉐의 다른 모델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2000년에 선보인 포르쉐 카레라 GT 프로토타입, 2014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포르쉐 918 스파이더 역시 더블 버블 디자인을 채택했어요. 더블 버블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시각적인 효과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공기역학적 측면에서도 공기 저항 계수를 낮추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죠. 이는 차체 형상 측면에서 전면의 공기저항을 줄이는데 유리한 장점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차체 형상은 매끄러운 곡면을 주는 것이기에 만드는 데에 상당한 기술적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포르쉐처럼 경량형 로드스터를 만들어야 한다면 탄소섬유 등 고가의 소재를 투입하므로 제조원가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디자인은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고 기능적으로도 뛰어난 데다 달리는 즐거움을 한껏 고조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디자인 채택한 회사들이 그저 단순히 차량의 판매량만을 보고 제작을 결정하지는 않는 이유입니다.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는 항상 소비자와 포르쉐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차였습니다. 포르쉐는 1987년 프랑크푸르트 IAA에서 클럽스포트 콘셉트카를 내놨고, 이어서 최초의 양산형 스피드스터는 1988년 출시했습니다. 911 카레라를 기반으로 전기형 161대 후기형 2,103대를 제작했죠. 후속 모델은 1993년 2월 964 세대 911 스피드스터로 이어졌습니다. 993 세대의 911 스피드스터는 생각보다 일찍 나왔는데 1995년 역시 카레라 차체를 기반으로 나왔습니다.
993 스피드스터의 경우 너무 희귀해서 2대만 남았는데,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제리 세인펠트(jerry Seinfeld)가 갖고 있어요. 제리 세인펠트는 포르쉐를 사랑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죠. 그는 무인도에 가져갈 3가지 물건으로 “356 스피드스터, 964 카레라 RS, 918 스파이더”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에요.
2010년에는 997세대의 911 스피드스터가 선보였습니다. 그해 10월 파리모터쇼를 데뷔 무대로 삼았죠. 3.6L 6기통 복서 엔진을 장착한 911 스피드스터는 단 356대만 한정 생산됐고 전 세계 모터팬들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2019년 991세대 911 스피드스터는 510마력까지 출력을 끌어올리며 911 R 그리고 911 GT3와 함께 순수한 운전자 중심의 스포츠카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911 스피드스터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더블 버블 커버 외에도 리어 스포일러와 리어 에이프런이 스피드스터 전용 디자인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시트의 중앙 패널은 천공 가죽으로 덮여있고 B필러, 헤드레스트와 카본 도어 실, 중앙 회전계에는 ‘스피드스터’ 로고가 자리 잡게 되었죠. 계기판은 흰색 바늘과 검은색 다이얼, 녹색 숫자와 눈금을 썼는데 이는 356 스피드스터부터 써왔던 헤리티지입니다.
911 스피드스터에게 이런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다른 포르쉐와 구분을 짓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죠. 이런 탓에 포르쉐는 오직 스피드스터에게만 ‘헤리티지 디자인 패키지’를 옵션으로 제공합니다. 스타일 포르쉐 부서에서 제작하고 포르쉐 이그제큐티브에서 이를 장착하고 구현하게 됩니다.
포르쉐 911 스피드스터에 대한 마니아들의 사랑은 유별납니다. 최근엔 ‘나만의 포르쉐’를 만드는 프로그램 ‘존더분쉬(Sonderwunsch)’가 주목을 받고 있죠. 포르쉐 애호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스피드스터 수집가인 루카 트라치(Luca Trazzi)는 존더분쉬 프로그램을 통해 911 스피드스터(Type 993)에 대한 꿈을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전적으로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한 단 한대의(Factory One-Off) 자동차가 탄생했습니다. 그는 이 차를 올해 몬터레이 카 위크를 통해 세상에 공개하기도 했죠.
이렇듯 포르쉐 스피드스터는 과감한 디자인 그리고 성능을 결합해 순수한 로드스터의 즐거움을 포르쉐 스타일로 선보인 모델입니다. 기능을 담은 참신한 디자인은 오랜 세월 동안 가다듬어 포르쉐의 헤리티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포르쉐 디자인은 단순히 멋져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성능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임을 바로 포르쉐 스피드스터로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