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가 필요 없다. 정말 오랜만에 꼭 갖고 싶은 차를 만났다. 포르쉐라는 브랜드를 걷어내고 생각해 봐도 여전히 만족스럽다. 미드십 구조에 6기통 수평대향 엔진을 품었고, 언제든 탑을 열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차. 드림카로 손색없는 박스터 GTS 4.0을 시승했다.
존재감 확실한 엔진, 도로 위의 성악가
지난 2018년 박스터 GTS를 만난 적 있다. 수평대향 2.5L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365마력을 발휘했고, 0-100km/h 가속 시간은 4.3초로 매콤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4기통의 한계는 분명했다. 기본형보다 우렁찬 소리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답답했고, 특히 고회전에서 느낌은 이전 자연흡기 엔진과 사뭇 달랐다.
이번에 시승한 박스터 GTS 4.0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4.0L 엔진이 얹힌 모델이다. 6기통 수평대향 그리고 자연흡기 엔진이다. 배기량이 커진 만큼 출력도 407마력으로 상승했다. 0-100km/h 가속 시간은 딱 4.0초, 최고 속도는 288km/h다.
레드존은 7,800rpm이다.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요즘 터보차들이 낮은 rpm을 사용하는 걸 생각하면 꽤 높은 수준이다. 박스터 GTS 4.0의 장기는 카랑카랑한 엔진 음색. 마치 성악가의 노래를 듣는듯하다. 낮은 rpm에선 테너의 저음이 나긋하게 들려온다. 3,000-5,000rpm에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5,000rpm이 넘어가면 거짓말 조금 보태 소프라노 소리가 들린다. 다채롭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분명 악기는 하나지만, 다양한 소리를 낸다.
힘은 맹렬하지만 부드럽고 예상 가능하다. 최고출력은 7,000rpm에서 나온다. 43.9kg.m의 최대토크는 꽤 높은 영역대인 5,500rpm에서 나온다. 자연흡기 엔진답다. 높은 영역대에서 힘을 분출하지만, 회전수를 올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엔진은 고회전에서도 지치지 않고 차를 채찍질한다. 0-200km/h 가속에는 13.7초가 걸린다.
포르쉐를 타며 변속기에 불만족스러웠던 기억은 없다. 장착된 7단 PDK의 단점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고성능 모델에서 추구하는 변속의 신속·정확성 면에선 만점을 줘도 괜찮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
존재감 어필하기 부족한 외모
얼핏 보면 박스터 기본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GTS 모델답게 곳곳을 검은색으로 칠했다. 스포일러 립, 프런트 에이프런의 에어 인테이크, 전방 안개등, 테일램프 렌즈, 뒤 범퍼 등이 검게 변했다.
옆쪽에는 GTS 4.0이 쓰여있는데, 실내외에서 유일하게 4.0이란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프린팅 스티커가 아닌 불룩한 전용 배지를 달아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GTS 전용 새틴 글로스 블랙 색상의 20인치 알로이 휠이 장착되며, 앞뒤에 각각 235mm, 265mm 너비 타이어와 조합된다. 크로스 드릴 디스크와 빨간 캘리퍼가 기본이며, 포르쉐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PCCB)는 추가 옵션으로 선택 가능하다.
718 스파이더와 718 카이맨 GT4에 들어간 트윈 테일 파이프 스포츠 배기 시스템도 적용된다. 새들 타입(Saddle-type) 디자인의 배기 시스템 역시 검정 처리되어 GTS만의 특징을 살렸다. 기본 추가된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은 차고를 10mm 낮춰 더욱 스포티한 자세를 만든다.
실내는 알칸타라와 카본으로 장식했다. 스티어링 휠과 루프라이닝, 그리고 A 필러에는 레이스 텍스(Race-Tex) 소재를 썼고, 센터 콘솔 트림 등은 카본으로 제작됐다. 계기판 타코미터, 안전벨트, 헤드레스트 등에는 GTS 레터링을 넣었다. 카민 레드 및 크레용 색상의 GTS 인테리어 패키지는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일상을 겸할 수 있는 ‘드림카’
승차감이 의외로 괜찮았다. 우당탕거리며 도로를 훑을 줄 알았으나, 의외로 차분하고 부드럽게 요철을 넘는다. 물론 서스펜션 감도를 부드럽게 해놓았을 때 이야기다. 단단하게 바꾸면 허리 두드리는 승차감을 맛볼 수 있다.
4기통 박서엔진만큼은 아니지만, 큰 배기량 치고 준수한 연비를 낸다. 공인 복합연비는 8.4km/l. 60km/h 정도면 이미 7단 기어와 맞물린다. ISG도 활발히 작동하며 조금이나마 기름을 아낀다. GPS 기준 100km/h에서 엔진 회전수는 2,000rpm을 조금 넘긴다.
바닥에 붙어 다니는 납작한 스포츠카지만 의외로 넉넉한 공간을 갖고 있다. 트렁크 용량은 앞 150L, 뒤 125L다. 앞이 더 깊어 큰 짐 넣기 좋다. 대식가가 아니라면 마트에서 장본 정도는 실을 수 있다. 실내 수납공간은 부족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별로다. 애플카플레이를 지원하는 7인치 터치스크린은 크기가 작고, 후방카메라와 어라운드뷰는 화질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포르쉐는 전동화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순수 전기차 타이칸을 선보였고, 차세대 마칸은 전기차로만 출시된다. 물론 아직 신형 박스터가 전기차로 나올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다. 확실한 건, GTS 4.0이 최근 출시한 25주년 한정판과 더불어 마지막 자연흡기 엔진 박스터라는 점이다.
박스터는 많은 사람들의 드림카다. 멋진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 그리고 오픈 에어링까지, 꿈꾸던 바를 한 번에 이룰 수 있다. 게다가 GTS 4.0은 자연흡기 감성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 가격은 1억2,140만 원. GTS 4.0을 기반으로 한정판 옵션을 더한 25주년 모델은 1억3,180만 원이다. 박스터치고 비싼 가격이지만, 기본 적용된 옵션과 희소성을 감안하면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Verdict>
4.0L 6기통 자연흡기 박서엔진과 미드십의 조화. 여기에 오픈탑 모델. 게다가 포르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Good
희소성 높은 자연흡기 박서 엔진. 박스터 최상위 모델로서 가치.
Bad
구닥다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이제는 올드한 실내 디자인.
<Competitor>
재규어 F-타입 : V8 터보 모델 구매 가능. 대신 비쌈. V6도 박스터 GTS 4.0보다 비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