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이다. 사실 ‘가장 전기차에 가까운 하이브리드 구동 시스템’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억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적어도 시내에선 그렇다. XM3보다 상품성이 좋아졌지만, 덩달아 가격도 껑충 뛰었다는 점이 구매를 망설이게 할 듯하다.
<Verdict>
르노코리아가 처음 선보이는 훌륭한 하이브리드 SUV. 가격 정책은 고민이 필요하다.
Good
- 완성도 높은 하이브리드 시스템
- 여전히 우수한 주행감각
Bad
- 높은 시작 가격
- 부족한 엔진 힘
<Competitors>
-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 : 연비 깡패. 시작 가격이 더 저렴하고, 실내도 조금 더 넓다.
- 현대 코나 하이브리드 : 연비 깡패 2. 가격이 더 싸지만, 실내는 다소 좁다. 외모는 호불호가 갈린다.
XM3 E-테크 하이브리드, 이질감 없는 외모
공식 명칭은 ‘XM3 E-테크 하이브리드’다. 유럽에서는 아르카나 E-테크 하이브리드로 팔리고 있는데, 르노코리아 XM3와 르노 아르카나는 사실상 동일한 모델이기에 같은 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플랫폼은 최근 국내에서 단종된 캡처 및 클리오와 동일한 CMF-B를 사용한다.
외모는 기존 XM3에 하이브리드 전용 파츠를 추가한 정도. 크게 부각되는 수준은 아니다. 아르카나 상위 트림에만 적용 중인 F1 다이내믹 블레이드 범퍼는 앞쪽에서 가장 큰 차이며, 보다 큰 공기흡입구를 바탕으로 기본 XM3 대비 더욱 스포티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여기에 인스파이어 디자인 패키지를 추가하면 장식이 조금 더 늘어난다. 하이브리드 전용 외장 색상 일렉트릭 오렌지와 웨이브 블루를 추가 선택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휠은 17인치를 기본으로 시승차는 18인치 휠/타이어를 끼운다. 사이즈는 215/55R18로 승차감을 고려한 무난한 세팅이다. 머플러 팁은 장식으로 실제 배기구는 친환경차답게 범퍼 아래쪽으로 숨겼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이 487L인데, 기존 513L와 비교하면 다소 줄었다. 트렁크 바닥에 배터리가 깔리며 바닥이 조금 높아진 탓이다. 하지만 비슷한 차체 크기의 기아 셀토스(498L)와 큰 차이 없고, 경쟁 모델로 꼽는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451L)보다 넓어 불만을 가질 일은 없어 보인다.
실내 디자인은 XM3와 거의 동일하다. 캡처 최상위 트림에만 들어가던 E-시프터(전자식 변속기)가 들어갔다는 정도다. 계기판은 기존과 동일한 디지털 사양이며, 9.3인치 중앙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무선 안드로이드 오토/애플 카플레이와 인카페이먼트 시스템이 추가됐다. 통풍 및 열선 시트를 지원하는 점도 좋다. 그 옆에는 EV 모드 버튼이 새로 생겼다.
뒷좌석 공간은 셀토스, 니로 보다 조금 좁은 정도다. 현대 코나보다 약간 넓게 느껴진다. 시트 어깨 부분에는 스웨이드 재질을 추가했는데, 지지력 등의 기능성보다 스포티한 감성에 초점을 맞춘 옵션으로 보인다. 센터 터널은 살짝 솟아 있는 편. 뒷좌석에도 2단계 열선 시트를 지원하며, USB A타입 단자도 2개 넣어 원활한 전자기기 사용을 돕는다. 다만, 시거잭 자리를 막은 동그란 플라스틱 커버는 눈에 다소 거슬린다.
F1에서 가져온 기술? 타 보면 안다
기술적인 설명은 간단히 하고 주행 느낌을 위주로 풀어보려 한다. 우선 XM3에 들어간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모터가 2개 들어가는 직병렬식이다. 토요타나 혼다 등 일본계 브랜드가 주로 직병렬식을 사용하는데, 이와는 또 차이가 있다.
실 주행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건 충방전 유무다. 보통 직병렬식은 메인 모터가 구동과 충전을 담당하고, 서브 모터는 충전만 담당한다. XM3 하이브리드는 두 모터 모두 구동과 충전에 관여한다. 작은 모터들로도 적당한 힘을 합칠 수 있으니, 합산 출력은 올라가고 구동계 무게는 줄어든다. XM3 하이브리드에는 각각 36kW(약 49마력), 15kW(약 20마력) 사양 배터리가 들어갔다. 86마력(PS) 엔진과 힘을 합한 시스템 총 출력은 145마력이다.
도심지에서는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탑재한 리튬이온 배터리 용량이 고작 1.2kWh에 불과한데, 이를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느낌이다. 참고로 니로 하이브리드(1.49kWh)는 물론이고 아반떼 하이브리드(1.32kWh)보다도 적은 용량이다. 과한 엑셀링만 하지 않는다면 50km/h 언저리까지 전기모터만으로 구동할 수 있었다.
EV 모드를 켜면 전기차처럼 주행하는데, 마찬가지로 과한 엑셀링을 하거나 속도가 높아지면 스스로 꺼진다. 사실 스트롱 하이브리드에서 EV 모드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배터리 용량도 작고 모터 출력도 약하기 때문. 그럼에도 르노가 자신 있게 EV 모드를 넣은 건 그만큼 하이브리드 구동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이야기다. 회생제동을 강하게 사용하는 B모드도 운전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적당히 조율했다. 대신 원-페달드라이빙은 어려워 보인다.
도심 주행이라면 충분한 가속 성능을 보인다. 70~80km/h 정도까지 무리 없이 속도를 높인다. 그러나 고속영역에 올라서면 가속이 확실히 더디다. 근본적으로 엔진 힘이 약하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추월 가속 시 알피엠이 치솟고 덩달아 소음도 커진다. 이 경우 애써 높인 연비도 쉽게 떨어진다. 도심에서 주로 운전한다면 문제가 크게 되지 않지만, 장거리 주행을 염두에 둔다면 구매에 고민이 될만하다. 1시간 반가량의 테스트주행에서 기록한 연비는 약 16.2km/l였는데, 주행 성능을 테스트한 결과치고 준수한 수치다. 주변 기자들은 20km/l를 쉽게 넘기는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준수한 주행감과 승차감을 갖춘 XM3에 추가적으로 하이브리드 구동계가 얹힌 덕분인지, 승차감은 한층 묵직한 모습이다. 18인치 휠/타이어를 신었음에도 요철을 잘 거른다. 물론, 큰 충격에는 ‘탕’ 하는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이는 소형 차급 한계로 경쟁 모델들에서도 나오는 문제점이다. 핸들링 실력도 좋다. 코너에서 차가 의도한 대로 잘 따라오며, 주행 곡선을 예측하기가 쉽다. 다만, 스티어링 휠 감각이 너무 가벼운데, 이는 시내 주행을 염두에 둔 세팅으로 보인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살짝 무겁게 바뀌긴 한다.
시내 주행이 주를 이룬다면 강력 추천
사실 차를 시승하기 전 기대가 크지 않았다. 제원상 경쟁 모델들보다 떨어지기 때문. 하지만 실제 만나본 XM3 하이브리드는 기존 XM3가 가진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며 아쉬웠던 부분을 잘 보강한 모습이었다. 이를테면, 전에는 오토홀드가 작동해있는 상태에서 출발하면, 엔진이 켜지며(ISG 작동) 갑자기 차가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터보 엔진이 힘을 어느 순간 왈칵하고 쏟아내는 느낌인데, 하이브리드 모델에서는 이런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오토홀드가 풀리며 부드럽게 전기모터로 가속을 시작한다. 또, 전 트림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유지 기능 등의 주행 보조 장치가 기본인 점도 좋다.
대중차 구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가격이다. 아무리 구성이 뛰어나도 가격이 비싸다면 선택받기 힘들다. 개별소비세 인하 및 친환경차 세제혜택을 반영한 XM3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RE 3,094만 원, 인스파이어 3,308만 원, 인스파이어(e-시프터) 3,337만 원이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괜찮지만 몇몇 아쉬운 부분이 있다. 우선 17인치 휠과 타이어를 끼우려면 무조건 가장 아래 트림인 RE를 선택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9.3인치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RE 트림에서 선택하려면 무려 206만 원이 든다. 이 돈이면 더 좋은 구성의 인스파이어를 살 수 있으니 상위 트림으로 올라가게 된다. 통풍 시트를 포함한 시트 패키지는 최상위 트림에서도 추가 옵션이다. 노골적으로 상위 트림을 유도하는 가격/옵션 정책이다. 구매를 원한다면 경쟁 모델과 면밀한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