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브랜드 ‘알파와 오메가’라 할 수 있는 아이코닉 모델, 폭스바겐 골프를 2022년 시작과 함께 출시했다. 폭스바겐 골프는 브랜드를 넘어 국내 자동차 시장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실용적인 C 세그먼트 해치백 대표주자인 폭스바겐 골프는 출시 당시부터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활용성으로 20-30대 젊은 소비층의 큰 관심을 받아 왔고, 수입차 대중화를 통해 시장 규모를 늘린 모델이기 때문.
5세대부터 국내 정식 출시한 폭스바겐 골프는 6세대, 7세대를 거치며 젊은 소비층에 ‘생애 첫 수입차’란 상징성으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간 C세그먼트 해치백의 인기가 없던 국내 시장에서 골프의 판매량은 주목할 만 했고, 한때 현대차 i30보다 더 많이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폭스바겐 그룹부터 터져 나온 디젤게이트로 폭스바겐 골프는 큰 타격을 입었다. 디젤게이트 이후 폭스바겐 골프는 한 동안 국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때마친 콤팩트 SUV가 급부상하고 뒤를 잇는 대안모델도 없어 ‘골프 클래스’라는 애칭을 가진 C 세그먼트 해치백 시장은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리고 2022년 시작과 함께 폭스바겐 골프가 다시 돌아왔다. 8세대로 발전한 골프. 디젤게이트가 불거지기 전까지 국내엔 7세대 모델이 판매됐지만 글로벌에 출시됐던 7.5세대는 출시되지 않았다. 때문에 폭스바겐 골프 8세대는 비록 글로벌 공개이후 4년차를 넘긴 중고 신인이다.
8세대 골프는 7세대에서 썼던 MQB 플랫폼을 그대로 쓴다. 플랫폼이 동일하니 전체적인 차의 크기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내외관 디자인 변화가 큰 데, 특히 실내는 극적인 변화를 이뤘다 할 정도로 챙겨볼 구석이 많다.
외관은 47년간 이어져 내려온 골프의 디자인 정체성을 그대로 잘 살리면서 최근 디자인 트렌드를 잘 접목시킨 모습이다. 측면부 도어캐처와 일치하는 벨트라인,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그린 하우스, 굵직한 C자형태로 꺾인 C필러 부분 형태, 빵빵한 뒷태는 여전하다.
여기에 좌우 헤드라이트를 하나로 이어주는 일자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 라이트가 더해진 전면부는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헤드라이트에는 폭스바겐의 최신 주행 안전 및 편의 시스템인 IQ. 드라이브의 LED 라이트가 적용됐다. 상위 트림의 경우 매트릭스 LED 라이트 기능까지 추가해 마주오는 자동차를 피해 조사 범위를 조정한다거나 스티어링 각도에 따라 코너를 비추는 코너링 어시스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실내 변화는 극적이다. 7세대 폭스바겐 골프에 익숙했던 모습이 싹 다 걷혔다. 디스플레이는 계기판에 10.25인치, 메인디스플레이에 10인치 사용된다. 이 디스플레이를 하나로 이은 듯한 와이드 콕핏 형태를 띄어 치수보다 더 크게 보이는 효과를 냈다.
메인 디스플레이는 터치 방식을 지원해 센터페시아 쪽 물리 버튼 기능을 대부분 흡수했다. 간결해진 센터페시아쪽은 사용자가 주로 사용하는 공조, 주행모드, 주차 지원 등의 핵심 기능 버튼만 남겨놨다. 물론 이 버튼도 터치 방식이다. 센터 콘솔쪽에는 기어 셀렉터와 시동버튼 등이 존재한다. 기어 시프트는 포르쉐 타이칸의 그것처럼 짧고 뭉툭한 형태를 사용해 부피감이 줄어 들었다. 이 기어 시프트는 폭스바겐 최초의 시프트-바이-와이어(Shift by Wire) 방식을 사용한 전자 제어식이다. 이 기능과 함께 폭스바겐 콤팩트카 최초로 윈드실드에 바로 이미지를 투영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적용됐다.
대신 스티어링 휠에는 전보다 많은 버튼이 올라갔다. 폭스바겐의 반자율주행시스템은 IQ.드라이브가 적용돼 다양한 주행 편의 기능을 조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신의 반자율주행시스템은 0-210km/h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주행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의 운전피로도를 현저히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파워트레인을 살펴보면 갑자기 5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기분이다. 직렬 4기통 2.0L TDI 엔진과 7단 DSG 변속기 때문이다. 엔진 출력도 그대로. 최고출력은 150마력, 최대토크는 36.7kg.m으로 세련미 넘치는 내외관 디자인과 기능에 비해 한 세대 뒤쳐진 모습.
폭스바겐은 SCR을 두 번 분사해 질소산화물을 낮추는 기술로 배기가스를 감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수입차 트렌드는 엔트리 모델에도 점점 디젤 엔진을 퇴출하고 있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번 시승회에선 가솔린 모델에도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적용한다거나, 다양한 전기화 파워트레인을 투입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폭스바겐 골프는 글로벌 기준 1.0L부터 2.0L의 다양한 가솔린 엔진과 PHEV 모델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오로지 디젤 모델만 판매된다. 국내는 디젤은 유럽 기준, 가솔린은 북미 기준으로 인증 기준을 따른다. 폭스바겐은 북미에 오로지 2.0L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폭스바겐 골프 GTI와 R모델을 판매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이번에 출시된 디젤 엔진과 함께 상반기에 GTI 모델만을 들여올 예정이다. 전기화 파워트레인에 대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폭스바겐 골프의 주행 감각은 여전하다. 콤팩트한 크기에서 오는 날렵한 주행은 이 클래스에선 이번에도 골프가 독보적이다. 실 사용영역에 걸쳐 있는 토크 밴드로 어느 주행 상황에서도 디젤 엔진 특유의 힘 있는 토크를 느낄 수 있다. 최근 300마력쯤은 우습게 내는 2.0L 엔진 대비 출력은 낮지만 보통 한 명 혹은 두 명 정도가 주로 이용하는 세그먼트 특성상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기에 일반 도로든 고속화 도로든 출력의 한계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부족함이 없다.
빠릿한 핸들링 감각도 그대로다. 다만 이전 세대보다 스티어링 감도가 살짝 여유로워진 듯 하다. 7세대는 스티어링 휠 각도에 따라 칼 같이 차체가 움직였다면, 8세대는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차체가 반응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느낌을 줄 정도의 움직임은 아니다. 최근 이 급에서 득세를 하고 있는 C 세그먼트 SUV 대비 다이내믹한 주행 상황에서의 스티어링 반응이나 좌우 움직임, 앞 뒤 움직임 등 모든 부분에서 우월하다.
시승한 폭스바겐 골프 8세대는 파워트레인의 아쉬움을 잠시나마 잊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자동차다. 개인적으로 SUV처럼 치장한 어설픈 콤팩트 SUV를 선택하느니 활용성면에서 전혀 뒤처짐 없고 운동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해치백을 선택할 것이며, 그 해치백의 장점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모델이 바로 폭스바겐 골프다. 비록 출시된 지 4년차에 접어 들었지만 이제라도 출시된 점이 반가울 따름.
하지만 폭스바겐 골프가 마주해야 할 현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먼저 콤팩트 SUV가 점령한 동급 상황이다. SUV 대세 흐름에 따라 장시간 자리를 비운 해치백 시장은 이제 콤팩트 SUV의 독주 무대가 됐다. 또한 동급 콤팩트 SUV는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갖추고 소비자에게 구애의 손길 보내고 있다. 후발 주자인 폭스바겐 골프 8세대가 이제는 매력 없는 디젤 엔진 하나만 가지고 주행 감각의 장점을 어필하기엔 힘겨워 보인다.
더욱이 가격 또한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폭스바겐 골프 8세대는 기본 프리미엄 트림이 3,625만원대, 상위 프레스티지 트림이 3,782만원대다. 옵션 조금 포기한다면 폭스바겐 상위 프리미엄 브랜드의 콤팩트 해치백까지 넘 볼 수 있는 가격대다. 물론 폭스바겐 티록이나 티구안처럼 ‘폭풍’할인이 더해진다면 수요를 많이 당겨 올 수 있겠지만, 요즘 반도체 이슈로 공급 이슈로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6년간의 공백을 깨고 해치백 시장 재건에 나섰다’라는 거창한 출사표를 들고 나온 폭스바겐 골프 8세대. 브랜드가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해치백으로 거듭나 세그먼트를 살릴지, 극소수의 ‘골프 마니아’의 선택만 받게 될지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 된다.
<Verdict>
‘콤팩트 해치백’ 왕의 귀환. 하지만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쉽지 않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Good
- 유럽산 해치백의 기준이 선사하는 날렵한 움직임. 실용성까지 갖춘 ‘펀카’란 이런 것
- 최신의 시스템인 덜어 주는 운전 피로도
- 대충 다녀도 놀라운 연비
Bad
- 디젤엔진
- 엔진 소음과 진동, 하체 소음, 풍절음…NVH 대책 따윈 없나요?
- 뒷좌석은 가방과 캐리어에 양보하세요
<Competitor>
- 푸조 308 : 골프 못지 않은 역동적인 주행 감각을 지닌 프랑스산 해치백
- 미니 5도어 해치 : 주체할 수 없는 디자인과 주행감각을 원한다면 미니로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