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에 이르는 포르쉐 역사에는 여러 전설적인 모델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4세대 911이다. 993으로 더욱 잘 알려진 이 클래식 911은 아직까지도 많은 포르쉐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후의 공랭식 엔진을 얹은 포르쉐라는 사실 때문이다. 도대체 공랭 엔진이 무엇이길래 등장한지 30년이나 된 993에 대한 사랑이 여전할까? 오늘은 바로 이 993과 포르쉐 공랭 엔진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매력적인 디자인과 첨단 기술력을 보여준 993
993은 1993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단번에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우선 디자인이 있다. 993은 초대 911부터 시작한 고유의 디자인 정체성을 시대적 흐름에 맞게 재해석했다. 예컨대 윈드실드에서 시작해 리어 범퍼까지 매끄럽게 떨어지는 911 특유의 실루엣이 있다.
이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993은 볼륨감 넘치는 차체, 일체형 범퍼 등을 더해 세련미를 강조했다. 그래서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993의 뒷태는 매력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993은 앞모습도 매력적이다. 결정적으로 공기역학적인 특성을 반영해 각도를 눕힌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덕분에 993은 전 세대 911들과 비교해 날렵한 모습이 두드러졌다.
933은 역대 991이 그러했듯이 멋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첨단 기술과 포르쉐의 노하우를 더해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실제로 993은 완전히 재설계한 알루미늄 섀시와 경량 구조를 적용했다. 무엇보다 993을 통해 911 시리즈 최초로 선보인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현재까지도 최고의 서스펜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기술력 덕분에 993은 리언 엔진, 리어 드라이브 방식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주행 성능과 운전 재미를 선사했다.
절정 성능을 자랑한 993의 공랭 엔진
하지만 993의 진짜 매력은 역시나 공랭 엔진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포르쉐 공랭 엔진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다른 차와 엔진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매력에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도 911의 엔진은 수평대향 방식이었다. 이런 동특한 방식에 공랭 시스템이 더해진 결과 유일무이한 엔진이 탄생할 수 있었다. 거친 듯하면서도 건조한 특유의 배기음, 부드럽게 상승하는 회전수, 고회전에서도 지치지 않는 강력한 성능. 911의 공랭 엔진이 지닌 매력은 다양했다.
이런 매력은 993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3.6L 엔진을 사용한 초기형 993 카레라는 272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1995년 등장한 후기형 카레라는 최고출력이 285마력까지 상승했다. 이후 993은 두 개의 터보 차저를 더한 911 터보까지 발전했다. 993 터보의 최고출력은 408마력에 달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00대 한정 생산 제작된 후륜 구동 기반의 911 GT2는 최고출력을 450마력까지 끌어올리며 포르쉐 공랭 엔진의 엄청난 성능을 보여줬다.
포르쉐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공랭 엔진
사실, 993의 공랭 엔진이 보여준 성능과 매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이르는 진화의 산물이었다. 포르쉐의 공랭 엔진은 1963년 초대 911을 통해 최초로 등장했다. 수평대향 6기통 2.0L 엔진이 그 주인공이다.
이후 포르쉐 911의 공랭 엔진은 발전을 거듭했다. 964에서는 배기량을 3.6L로 키웠다. 그리고 전자식 연료 분사 장치, 단보 크랭크 샤프트, 싱글 오버헤드 캠(SOHC), 더블 체인 드라이브, 알루미늄 합금 재질의 엔진 블록과 헤드 등을 적용했다. 그 결과 최고출력이 250마력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993에서는 기존 공랭 엔진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사실상 911 공랭 엔진의 완성도는 이미 964에서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크게 손 볼 필요가 없었다.
자연흡기 방식의 공랭 엔진이 발전하는 사이, 공랭식 터보 엔진도 진화를 거듭했다. 1974년 최초로 등장한 911 터보는 3.0L 배기량을 지닌 수평대향 6기통 공랭 엔진에 터보차저를 더해 260마력의 막강한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964 터보의 공랭식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을 320마력을 높였고, 터보 S에서는 최고출력이 381마력에 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기량을 3.6L로 키운 964 터보 S는 최고출력이 385마력에 이르렀다.
993에 적용된 최후의 공랭식 터보 엔진은 앞서 언급한 대로 터보차저를 두 개 사용했다. 그 결과, 최고출력이 408마력까지 대폭 상승했다. 이후 최후의 공랭식 터보 엔진 911인 993 터보 S에서는 최고출력이 450마력까지 치솟았다. 이 정도면 현대적인 수냉식 터보 엔진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출력이다. 그리고 포르쉐 공랭식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450마력을 달성한 993 GT2까지 발전했다.
안타깝게도 공랭 엔진은 993을 끝으로 포르쉐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911이 곧 공랭 엔진’이었던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수랭 엔진으로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많은 것이 바뀐 최신 911(992)은 과거 993 못지 않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공랭에서 수랭으로, 자연흡기에서 터보로, 엔진 형식은 바뀌었지만 포르쉐 고유의 성능과 매력을 지켜냈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