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최고의 인기 모델, 카이엔이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오늘날, 카이엔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포르쉐 역사상 가장 빨리 100만 대 생산량을 돌파했다는 기록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기록은 지난 2020년 여름, 3세대 카이엔이 생산 라인을 빠져나오며 달성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카이엔의 연간 생산량이 최초로 8만 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카이엔의 이 같은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이번 시간에는 포르쉐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 카이엔의 매력과 역사를 1, 2편에 걸쳐 살펴본다.
카이엔의 시작, 프로젝트 ‘콜로라도’
카이엔의 등장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카이엔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1990년대 포르쉐의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 포르쉐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경제 위기를맞고 있었다. 1991~1992년에는 겨우 2만3,060대의 자동차를 팔았을 뿐이고, 적자 규모도 매우 심각했다.
포르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911이나 박스터 같은 스포츠카를 넘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고성능 SUV를 택했던 것이다. 초기에 포르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를 추진했다. 이미 SUV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M-클래스의 기술을 사용하고자 했다. 실제 1996년 포르쉐와 벤츠는 협력 관계를 맺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끝내 두 회사의 견해 차이로 무산이 되고 말았다.
이후 포르쉐는 새로운 협력사를 찾았다. 폭스바겐이 새로운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1997년 6월 ‘콜로라도’로 알려진 SUV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뒤, 공식적으로 포르쉐는 폭스바겐과 플랫폼을 공유해 새로운 SUV를 개발할 것이고 선언했다. 물론, 당시에는 카이엔이라는 이름이 비밀에 부쳐졌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포르쉐가 직면한 과제 중 하나는 '포르쉐 특유의 주행 성능을 구현하면서 세계 최고의 SUV와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자동차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였다. 그들은 고민을 거듭하며 답을 찾아갔다.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에서 절대적인 성능을 발휘하고 활기찬 주행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SUV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포르쉐 최초의 SUV이자 전설의 시작, 1세대 카이엔
프로젝트 콜로라도가 공식 발표된 지 4년 후, 마침내 2002년 9월 파리 모터쇼에서 포르쉐 최초의 5인승 모델이자 SUV가 공개됐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카이엔의 1세대 모델이었다. 1세대 카이엔의 지향점은 명확했다. 전형적인 포르쉐 성능을 지닌 견고한 오프로더이자 매우 역동적인 스포츠카였다.
다만 1세대 카이엔의 스타일링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포르쉐 고유의 디자인 정체성을 SUV라는 틀 안에 잘 담아냈다는 평가도 있었다. 반면, 멋지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포르쉐는 애초 1세대 카이엔의 연간 생산량을 2만5,000대로 예상했다.
하지만 1세대 포르쉐는 8년 동안 27만6,652대나 팔리는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연간 생산량으로 계산하면 3만5,000대에 조금 모자라는 엄청난 수치였다. 이러한 높은 판매량 덕분에 포르쉐는 재정난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카이엔의 대성공은 다른 포르쉐 모델의 완성도를 높이는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1세대 카이엔의 선풍적인 인기 비결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 외에도 빼어난 주행 성능에 있었다. 파리 모터쇼에서 카이엔 S와 카이엔 터보, 두 라인업이 먼저 공개가 됐는데, 당시로서는 SUV의 기준을 뛰어넘는 엄청난성능을 보여줬다. 카이엔 S는 V8 4.5L 엔진으로 340마력의 최고 출력을 냈고, 카이엔 터보는 같은 배기량의 엔진에 터보차저를 얹어 45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강력한 엔진 덕분에 최고 속도는 S와 터보 기준, 각각 242km/h와 266km/h에 달했다.
카이엔은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게 아니었다. 섀시 측면에서 포르쉐 팬들의 기대를 충족했다. 이는 카이엔을 통해 새로 도입된 포르쉐 트랙션 매니지먼트(PTM)가 구동력을 앞뒤 차축에 각각 38:62로 배분한 덕분이었다. 또한, 포르쉐 최초로 개발된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가 탑재돼 코너링 성능을 더욱 극대화했다. 특히 PTM의 능동적인 구동력 배분과 PASM에 포함된 에어 서스펜션은 카이엔의 지상고를 높여 오프로드 성능 강화에도 큰 도움을 줬다.
이후 1세대 카이엔은 V6 3.2L 엔진을 얹은 엔트리 모델 카이엔을 라인업에 추가하고 터보를 뛰어넘는 초고성능 모델 카이엔 터보 S까지 추가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7년 진행된 부분 변경에서는 좀 더 날렵한 스타일링과 함께 엔진 라인업을 다변화해 완성도를 보다 끌어올렸다. 그중 눈에 띄는 변화는 V6 3.0L 디젤 엔진을 얹은 카이엔 디젤의 추가와 V8 4.8L 자연흡기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해 운전 재미를 극대화한 카이엔 GTS의 등장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카이엔의 탄생 배경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새로운 포르쉐를 만들겠다는 당시 개발팀의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오늘날의 카이엔이 존재할 수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카이엔의 성공 신화를 이어간 2세대 카이엔과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3세대 카이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