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BMW의 모터스포츠 전문 부서로 시작된 BMW M은 그간 일상과 모터스포츠를 오가는 수많은 고성능 모델을 만들며 오늘날까지 진보를 거듭해 왔다.
역대 M 모델 중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깊은 차를 꼽자면 M 배지를 단 최초의 슈퍼카 M1,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 세단 M5, 레이스를 위해 탄생하고 M의 중추가 된 M3 등등 수많은 명차들이 있다. 개중에는 특별한 소수를 위해 한정 생산된 차량도, 모두를 위해 대량생산된 차량도 있다.
그런데 그런 M의 50년 역사에서도 유독 독보적인 존재가 있다. 한정 생산됐지만 누구나 꿈꿀 수 있는 현실적인 M 머신이었고, 동시에 25년 전 탄생한 초대 M3의 설계 사상을 가장 잘 계승한 모델이었다. 바로 1시리즈 M 쿠페가 그 주인공이다.
대박 난 막내 1시리즈, M을 꿈꾸다
이 특별한 M의 기원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BMW는 브랜드의 막내 엔트리 모델 1시리즈를 처음 선보인다. 프리미엄 브랜드 소비자층이 젊고 컴팩트한 엔트리 모델을 요구함에 따라 등장한 1시리즈는 작은 차체에도 후륜구동과 50:50의 무게 배분으로 스타일과 주행 성능 양면에서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했다.
처음에는 해치백만 출시된 1시리즈였지만, 유럽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쿠페와 컨버터블 버전으로까지 라인업을 확장한다. BMW 고유의 핸들링 감각을 누릴 수 있는 컴팩트한 차체에 당대 최신 BMW 디자인 언어가 반영된 1시리즈 쿠페와 컨버터블은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에서도 ‘대박’을 쳤고, BMW 패밀리의 어엿한 막내로 자리잡게 된다.
1시리즈의 흥행몰이에 BMW 경영진은 M 버전 개발을 검토한다. 초기 계획은 1시리즈 쿠페에 3.0L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해 300마력 정도를 내고, 경량화와 공기역학성능 강화를 통해 트랙 주행에 걸맞은 고성능 모델로 만드는 것이었다. 2007년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된 1시리즈 tii 콘셉트카가 당시 BMW의 구상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동차 업계는 큰 침체에 빠져들었고, 값비싼 럭셔리카와 고성능차 개발 계획이 줄줄이 취소된다. 더욱이 1시리즈에 M 배지를 붙이는 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모험이었고, BMW 경영진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프로젝트를 백지화하고 위기 극복에 집중하는 쪽을 선택한다.
사장님 몰래 만든 베이비 M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포츠카를 만드는 엔지니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간 베이비 M을 완성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경영진을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완성된 프로토타입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들은 M 디비전의 수장이 여름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를 치기로 결심한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M 전용 부품들을 조합해 1시리즈 M 모델을 완성하기로 한 것이다. 1시리즈는 당시 3시리즈와 많은 설계를 공유했기 때문에, 서스펜션 부품과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LSD) 같은 것들은 M3의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엔진은 Z4 35iS에 탑재된 3.0L 트윈터보 엔진을 가져다 약간의 튜닝을 통해 출력을 끌어올리고, 변속기는 경량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6단 수동변속기만 탑재한다. 마치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아이들이 깜짝 놀랄 무언가를 만들 듯, 엔지니어들은 고작 2주 만에 주행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사장님은 폐기된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걸 보고 당황했지만, 이내 직원들의 열정에 감탄했다. 더욱이 기존에 있던 부품을 활용해 큰 부담 없이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그들의 설득에, 1시리즈 M 프로젝트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름은 달랐지만 새로운 역사를 쓰다
콘셉트카 등장으로부터 4년여가 지난 2010년 11월, 마침내 1시리즈의 첫 M 모델이 출시된다. 공식적인 차명은 ‘1시리즈 M 쿠페’로, 통상 M 모델이 ‘M+숫자’ 모델명을 부여받는 것과는 다소 상이하다. 1978년 출시된 최초의 M 로드카이자 BMW의 전무후무한 미드십 슈퍼카, M1의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었던 까닭이다. 이런 역사 탓에 붙은 낯설고 긴 이름은 여러 나라에서 ‘1M’으로 줄여 불리기도 했다.
“M1을 M1이라 부르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1시리즈 M 쿠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말 그대로 운전의 즐거움에 철저히 집중한 구성 때문이었다. M 패밀리를 대표하는 M3는 이미 몇 세대의 진화를 거치면서, 1세대에 비하면 더 크고 강력한 엔진과 첨단 제어장치를 탑재하며 몸집이 많이 커졌다. 하지만 1시리즈 M 쿠페는 1세대 M3(E30)와 비슷한 크기에, 당시 현역이던 4세대 M3(E92)보다 100kg가량 가벼웠다.
게다가 BMW의 자랑인 직렬 6기통 엔진의 최고출력은 340마력에 달했고, 터보 엔진은 1,500rpm의 낮은 회전수에서 45.9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냈다. 이 폭발적인 퍼포먼스는 6속 수동변속기를 거쳐 오롯이 뒷바퀴에 전달됐고, 완벽한 무게 배분과 작지만 탄탄한 차체 덕에 거동은 날카로웠다. 일반 1시리즈보다 넓은 와이드바디와 LSD의 채용으로 코너링 성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당초 BMW는 1시리즈 M 쿠페를 2,700대만 만들 계획이었지만, BMW가 추구하는 ‘운전의 즐거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차를 찾는 주문이 세계 각지에서 쇄도했다. 한때 폐기될 뻔했던 베이비 M은 컬트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최종적으로 당초 계획의 2배가 넘는 6,309대가 생산된다.
1시리즈 M 쿠페는 출시 당시 영국 에보 매거진, 톱기어 매거진 등 유수의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스포츠카”라는 극찬을 받았다. 원조 M3가 추구했던 경량 컴팩트 스포츠카의 즐거운 퍼포먼스를 21세기에 부활시켰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심지어 단종된 지 10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BMW의 모던 클래식 중 하나로서 높은 소장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시리즈 M 쿠페의 유산은 그것뿐이 아니다. 1세대 1시리즈가 세대교체를 거치며 쿠페 모델을 2시리즈로 분화시킨 뒤에도 BMW는 경량 컴팩트 M 스포츠카를 계속해서 개발한다. 1시리즈 M 쿠페의 후속으로 2015년 출시된 모델이 바로 BMW M2다. M2는 M 패밀리의 막내이자 운전의 본질에 집중한 퓨어 스포츠 쿠페로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