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포르쉐하면 수평대향엔진과 리어엔진(RR, Rear engine-Rear wheel drive) 레이아웃을 대표했다. 포르쉐의 이런 대표성은 포르쉐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911의 트랙과 도로를 넘나드는 뛰어난 활약에 기인했다.
하지만 20세기말부터 지금의 21세기에 이르러 수평대향 리어엔진으로 대표되는 포르쉐의 특징이 조금씩 옅어 지고 있다. 더욱이 포르쉐 내 판매량을 살펴보면 이젠 RR레이아웃이 포르쉐를 대표하는 차체 구조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바로 프론트 엔진 포르쉐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프론트 엔진 포르쉐로 대표되는 모델은 파나메라, 카이엔, 마칸이다. 21세기초부터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한 프론트 엔진 포르쉐는 이제 포르쉐 전체 판매량의 70% 이상(2020년 판매량 기준)을 차지할 정도로 포르쉐의 대세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1990년대 태어난 세대들에게 포르쉐는 리어 엔진보다 프론트 엔진의 세단과 SUV가 더 익숙할지도 모를 정도다.
프론트 엔진의 포르쉐는 하루 아침에 반짝 나온 것이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르쉐는 리어 엔진의 911 후속으로 프론트 엔진의 스포츠카를 수 없이 개발하고 테스트했으며 실제 양산하고 출시해 911의 후속으로 점 찍기도 했다.
비록 포르쉐의 대세로 떠오르진 못했지만 파나메라, 카이엔, 마칸보다 먼저 등장해 프론트 엔진 포르쉐의 개발 역량을 높여줬던 대표적인 클래식 프론트 엔진 포르쉐 모델을 함께 살펴보겠다.
포르쉐 924
포르쉐 924는 포르쉐에 최초로 양산해 판매한 프론트 엔진 2+2 쿠페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꽤 오랜 기간 생산되며 큰 사랑을 받은 모델 중 하나다. 포르쉐는 사실 924 이전에 앞엔진 뒷바퀴굴림의 그란투리스 모델인 928을 먼저 개발하고 있었는데, 924가 이보다 한발 먼저 출시돼 최초의 타이틀을 가져갔다.
포르쉐 924는 포르쉐가 속해 있는 폭스바겐 그룹에서 제작에 참여한 모델로 엔진 역시 폭스바겐의 2.0L 직렬 4기통 엔진이 사용됐다. 포르쉐 답지 않은 외형과 성능, 더구나 수평대향엔진이 아닌 직렬엔진에 프론트 엔진 구조를 채택해 포르쉐 팬들에게 큰 원성을 샀지만 판매면에서는 괜찮은 성과를 낸 모델이다.
포르쉐 924의 또 다른 특징은 헤드라이트를 숨길 수 있는 팝업 헤드라이트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후에 출시될 928의 헤드라이트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포르쉐 924는 스탠더드 모델 출시 후 924 터보, 924 카레라 GT, 924S 등의 파생 모델이 생산됐고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도 활약을 펼쳤다.
포르쉐 928
포르쉐 928은 포르쉐가 최초로 시도한 럭셔리 GT카다. 현재 포르쉐에서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모델이 바로 파나메라인데 엄밀히 따지면 포르쉐 928은 파나메라의 직계 조상이라 할 수 있다.
포르쉐 928은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됐다. 포르쉐는 모기업인 폭스바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개발한 플래그십 모델을 만들기 원했다. 당시까지 생산했던 356이나 911, 924 등은 모두 폭스바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포르쉐는 그 동안 포르쉐가 지켜왔던 리어엔진, 수평대향 엔진을 과감히 버리고 프론트에 V형 엔진을 얹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또한 차체에 알루미늄, 폴리우레탄 등의 신소재도 사용했고 바이작 액슬, 획기적인 트랜스액슬 배치 등의 첨단 기술을 대거 적용했다.
기술적 완성도 뿐만 아니라 현재의 관점으로 봐도 미래 지향적으로 보일 정도로 디자인 완성도 또한 높았다. 911 대비 넓어진 실내 공간도 큰 장점. 하지만 포르쉐 928는 높은 완성도에 비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911의 위상을 더욱 높여준 조연 역할만 하고 말았다.
포르쉐 944
포르쉐 944는 포르쉐 924의 부족한 성능을 보완하고자 1982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한 포르쉐 프론트 엔진 스포츠카다. 포르쉐 944는 기본 모델인 쿠페와 함께 카브리올레 모델도 함께 운영했으며 자연흡기와 터보차저 엔진도 함께 생산했다.
엔진은 직렬 4기통의 기본 2.5L부터 2.5L 터보, 2.7L, 3.0L까지 다양하게 생산했으며 3단 자동 또는 5단 수동 변속기를 사용했다. 엔진 출력은 모델에 따라 140마력에서 최대 250마력까지 냈다.
포르쉐의 보급형 스포츠카인 포르쉐 924를 바탕으로 만든 만큼 합리적인 가격대에 포르쉐의 역동성을 맛볼 수 있었고, 포르쉐 924 대비 핸들링과 제동력, 정숙성 등을 향상시켜 상품성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과급기를 추가한 포르쉐 944 터보 모델의 경우 220마력을 냈는데 이는 당시 4기통 스포츠카 중에선 가장 높은 성능을 보인 모델이었다.
포르쉐 968
포르쉐 968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한 FR 레이아웃의 스포츠카다. 포르쉐 968는 포르쉐 944의 고성능 모델인 포르쉐 944 S2의 후속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개발과정에서 후속 모델이라 하기엔 바뀐 부품이나 사용된 기술이 거의 달라 새로운 모델명으로 출시된 것.
포르쉐 968은 보급 모델이었던 포르쉐 944를 바탕으로 했지만 상위 모델이었던 포르쉐 928이나 포르쉐 최초의 슈퍼카로 회자되는 포르쉐 959의 디자인 요소를 듬뿍 반영했고, 다양한 편의 장비도 추가됐다.
엔진은 포르쉐 944의 직렬 4기통 3.0L를 손봐 240마력으로 출력을 업그레이드한 엔진을 사용했다. 변속기는 포르쉐 944 대비 1단이 추가된 6단 수동변속기에 옵션으로 4단 자동변속기를 마련했다. 포르쉐는 1995년 마지막 포르쉐 968 생산을 끝으로 2002년 카이엔이 나올때까지 프론트 엔진 포르쉐를 만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