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10월 19일 현대차-인증중고차 양산센터를 공개하면서 본격적인 중고차 사업에 포문을 열었다. 경기도 용인 오토허브에 이어 두번째 장소다. 소비자들은 구매자와 판매자와의 정보 불일치로 이른바 ‘레몬마켓’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중고차 업계에 현대차가 진입한다는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모터플렉스는 현대차-제네시스 인증중고차 양산센터를 직접 취재하는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자신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현대차 아시아대권역장 유원하 부사장을 비롯해 국내지원사업부장 남원오 상무, 국내 CPO 사업실장 홍정호 상무 등은 모두 중고차 업계에 대한 당연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 사업에 대해 상당한 포부를 드러냈다.
인증중고차 양산센터를 직접 취재한 과정에서 살펴본 준비 내용이 기존 중고차 업계의 것과 어떻게 다른 지 살펴 본다.
- 왜 경기도 용인과 경남 양산을 선택했나?
현대차-제네시스 인증중고차는 경기도 용인의 대형 중고차 단지 오토허브(용인시 기흥구 중부대로 242) 그리고 경남 양산(경남 양산시 하북면 삼동로 44) 두 곳을 선택했다. 중고차 업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장소 선택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우선 용인 오토허브는 경부고속도로 신갈IC에서 곧바로 이어져 서울-경기를 배후지로 갖는 대형 중고차 단지다. 2014년 출범한 용인 오토허브는 2021년 AJ셀카로 알려진 신동해그룹에 편입됐다. 엔카도 이곳에 경기도에선 가장 큰 광고지원센터를 설치하면서 업계의 최고 단지로 떠올랐던 곳이다. 당연히 중고차 딜러들도 이곳으로 몰리면서 한때는 사무실 당 1억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이후 쇄락의 길을 걸었고, 3년 전 부터는 공실률이 올라가면서 수원 도이치오토월드와 SK V1 등 초대형 중고차 단지들이 들어섰다. 도이치오토월드로 대표하는 수원 남부 지역 중고차 단지의 돌풍은 대단했다. 사실상 ‘수도권 최고 중고차 단지’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수원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간 용인 오토허브 중고차 딜러협의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차의 오토허브 진입에 대해 반대 의사를 피력했지만 신동해 그룹은 현대차 입점을 선택했다. 사업적 판단으로선 당연하다는 내외의 평가가 있었다. 중고차 양대조합인 한국매매조합과 전국매매조합연합회도 이들의 안착에 대해 특별한 대응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현대차로선 큰 불협화음을 만들지 않고도 경기도 용인이라는 수도권 특별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었다.
경남 양산에 자리잡은 현대차-제네시스 인증중고차 센터도 지정학적 위치가 각별하다. 양산은 북쪽으로는 대구, 남쪽으로는 부산을 배후지로 두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현대자동차의 본진인 울산이 동쪽으로 1시간 거리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가장 큰 시장은 수도권을 빼면 영남권이 가장 큰 중고차 시장이다. 그리고 대구와 부산은 매년 수위를 다투는 중고차 시장으로 영남의 핵심 시장이다. 그런데 양산은 울산과도 가까우니 대구와 부산 두 곳을 노리고도 또 하나의 각별한 장점을 얻어낼 수 있는 주요 요충지로 적합한 선택이다. 이런 과정을 할 수 있는 정보력과 판단력은 향후 경험치를 더할수록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 100% 온라인 거래 & 하이랩 서비스
중고차 거래에 온라인 비중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10년대 후반부터다. SK엔카가 케이카와 온-오프라인 사업부로 쪼개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현재 온라인 중고차 거래 비중은 오프라인과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온라인 거래가 압도적이다. 오프라인 사업으로 출발한 케이카마저도 온라인 비대면 판매 시스템이 경매대수를 제외하고 소매대수 기준으로 보면 49.8%에 이를 정도다.(2022 케이카 IR자료 기준)
사실 중고차의 온라인 커머스 비중이 높다는 분석은 어느 정도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본지가 주목한 점은 중고차 구매 시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정보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현대차의 하이랩 서비스다. 하이랩 서비스는 그동안 중고차 거래 플랫폼이 주목하지 않았던 중고차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차급별-연령별 거래량, 매매등록 여부, 차량 상세 정보 및 이력확인, 중고차 정상매물 등록 여부 등을 모두 담았다.
심지어 신차 출고 시 컨디션과 비교해 중고차 매물로 달라진 사항을 모두 정리해 이 하이랩 서비스에 담았다. 중고차 해쉬태그 검색과 관심정보에 따른 매물리스트도 중고차 거래 플랫폼으로선 새로운 시도다. 목적은 하나다. 거래의 정보편차를 해소하겠다는 목적이다. 이 정보를 차를 살 때나 팔 때 모두 제공한다는 것으로 현대차 그룹의 모든 중고차 거래 플랫폼에 삽입된다. 웹과 모바일 모두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차는 시세 데이터 확보를 위해 최근 3년간 거래 데이터 약 500만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데이터를 ML 기술 기반 자동화 모델을 적용해 최적화한 알고리즘을 거쳐 잔존가치 대비 매물 가격의 기준치를 소비자들에게 밝힌다. 내가 사는 혹은 파는 차량의 가격에 의심 혹은 미심쩍을 만한 요소가 남지 않는 이유다.
- 오감 만족 점검실
중고차는 특성상 사용자의 이전 경력이 매우 특별하게 작용한다. 주행습관, 운행 환경, 차량 관리, 사고여부 등의 이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를 온라인으로 볼 때와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 다른 경우가 빈번하다. 중고차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불만도 ‘화면으로 볼 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생하는 정보 불일치 역시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현대차-제네시스 양산 인증 중고차 센터에서 발견한 오감만족 점검실은 정보 불일치를 지우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오감만족 점검실은 3대의 스캐너도 하부의 사진촬영과 타이어 마모도를 체크해 시각화하고 수치화한다. 여기에 실내 공기청정도와 냄새 그리고 시트 오염이나 마모도는 물론 변색여부까지 보여준다. 지금까지 어떤 중고차 플랫폼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다. 이 결과값을 보면 적어도 ‘화면으로 볼 때와 다르다’는 불만을 완전히 없애진 못해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부사진이 필요하다는 현대차의 생각은 적어도 2년전부터 중고차 업계에서 돌아다니던 소문이었다. 현재 대부분 중고차 단지에서 내-외관 사진만 턴테이블에 올려 약 20장 정도 찍는 것이 전부였던 터라 현대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중고차 관련 회사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오감만족 점검실의 스캐너는 다른 곳에서 방법이 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국방부와 청와대 등 정부 보안시설에서 사용하던 스캐너를 중고차 부문에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상당히 놀라운 시도였고, 차번호와 매칭해 플랫폼 매물과 연동하는 노력만 추가했다.
- 사회적 기대와 현대차 사업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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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인증중고차 양산센터 공개 이후 매스컴의 헤드라인이다. 대중적인 기대가 너무나 큰 사업이기 때문일 터. 기대와 희망이 가득 찬 헤드라인 일색이다. 1999년 SK엔카가 처음 출범할 당시 비슷한 사회적 분위기와 비슷하다. ‘대기업 중고차’라는 키워드다. 대기업이 하면 적어도 소상공인 중고차 업자들이 하는 불쾌한 상황은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깔려 있다.
현대차는 이런 사회적 기대감에 대해 사업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확한 목표 의식을 내비쳤다. 유원하 아시아대권역장은 “단순히 중고차 출범을 넘어 국내 중고차 시장 선진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올해는 인증중고차 5천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많은 고객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천-부천 등 중고차 인식이 좋지 않은 지역은 현대차가 모두 힘(자본과 인재)으로 쓸어버려야 할 숙제”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았다.
현장에서 확인한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의지는 대단히 굳건했다. 일각에서는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 현대 글로비스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100%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현대차-제네시스 인증중고차에서 글로비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취재를 시작하기 전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시키면서 상생을 당부했던 당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당부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고 싶었다. 박장관은 당시 “손익보다는 상생에 주력해 달라”고 거듭해 말했다. 현대차는 “5년 10만km 이내 중고차만 대상으로 하고 올해는 5천대만 목표로 매우 작은 물량”이라며 이렇게 제한하는 이유를 ‘중고차 업계와의 상생’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5년 10만km 중고차는 기존 업계에서 이른바 ‘알짜 매물’인데다 올해는 이제 두 달 남짓 남았다. 상생의 의지로 여기기엔 부족하다.
2025년 4월까지는 현대 기아자동차의 합산 시장 점유율이 7% 이내로 제한된다. 이 시기까지는 상품용 중고차로서 현대기아자동차 트레이드-인(Trade-in) 정책에 따른 내부 매입물량이 주요 매물이다. 따라서 전체 상품중고차 공급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25년 5월 이후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 알 수 없다.
취재를 마치고 올라오는 KTX에서 중고차 업계에서 변화를 목도했던 기억을 되짚어 봤다. 1999년 SK엔카의 중고차 시장 진입, 2017년 중고차 거래 시 세금계산서 의무화, 2020년 중고차 성능점검 책임 보험 의무화 그리고 2023년 현대차그룹 인증중고차 사업시작까지. 중고차 산업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지금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사업 시작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